Redirected from page "강구트급"

E,AHRSS

강구트급 전함

last modified: 2015-08-12 06:49:41 Contributors

image_213.jpg
[JPG image (Unknown)]
1차대전 당시의 네임쉽 강구트

Contents

1. 개요
2. 제원
3. 운용
4. 설계 및 구조
4.1. 화력
4.2. 추진
4.3. 장갑
5. 총평
6. 등장 매체
7. 외부 자료


1. 개요

러시아 제국소련이 운용한 전함. 12문의 12인치 함포로 무장한 드레드노트급 함선으로 당시 러시아의 기술력 낙후로 인해 조선소를 대외적으로 공개 입찰했는데, 결국 영국 존 브라운 사의 조선소에서 1909년부터 건조에 착수하여 1914년 1번함 강구트가 진수된 것을 시작으로 총 4척이 진수되었다. 러일전쟁으로 태평양,발트 함대를 모조리 날려먹어 전드레노트급인 포템킨이 가장 최신의 전함이었던 제정 러시아 해군에게 첫번째 드레드노트급인 이들은 그야말로 금쪽같은 존재들이었다. 같이 건조된 드레드노트급 임페라트리사 마리야급[1]과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러시아 주력 전함으로써 분투했다. 하지만 기구하고 짧은 함생을 이어가며 대부분 침몰로써 함생을 끝마친 임페라트리사 마리야급과 달리 강구트급은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살아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당시의 전함으로서는 매우 빈약한 12인치 주포와 얇은 장갑,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이라는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약했다. 특히 3번함 마라는 함생중 2번이나 격침되었지만 착저상태에서 함포를 쏘는 등 고군분투했다.

2. 제원

image_214.jpg
[JPG image (Unknown)]
강구트급 전함의 간략한 도면
image_224.jpg
[JPG image (Unknown)]
설계도
함급강구트급
이전 함급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전함
후속 함급페라트리사 마리야급 전함[2]
소속러시아 제국 해군 ~ 소련 해군
길이181.2m
26.9m
만재배수량27300톤
속력24.1노트 (1936년에는 22.5노트)
항속거리10노트로 5900Km
주포12인치 52구경장 3연장 주포탑 4기 (총 12문)
부포4.7인치 50구경장 단장 포곽 16기 (총 16문)
대공포3인치 63.5구경장 단장 대공포좌 1문 (총 1문)
어뢰17.7인치 단장 어뢰 발사관 4문 (총 4문)
장갑흘수선 125~225mm
갑판 12~50mm
주포탑 76~203mm
바벳 75~150mm
함교100~254mm

동급함
번호제국 당시 함명소련 당시 함명
1강구트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10월 혁명)
2페트로파블로브스크마라(장 폴 마라)
3세바스토폴파리쥐스카야 코뮤나(파리 코뮌)
4폴타바프룬제(미하일 프룬제)

3. 운용

러일전쟁 당시 침몰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페트로파블롭스크급의 이름을 계승한 이들은 1909년 건조가 결정되었으나 제국의 재정 악화로 인해 두마(의회)에서 건조를 미뤘다.[3] 그러나 차르 니콜라이 2세 의 압력에 의해 1911년부터 건조가 재시작되었고 세계대전의 압박으로 인해 포탑과 사통장치의 마무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1914년에서 1915년 사이에 해군에 인도된다. 당시 제 2위의 강대한 해군력을 보유한 독일 제국이 핀란드 만을 통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네 함선은 발트 함대에 소속되어 수도 방위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독일은 북해에서 영국 해군과의 일전에 몰두한 나머지 러시아 해군에는 관심도 두지 않아 러시아가 우려한 핀란드 만을 통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딱히 할 일 없이 훈련에만 전념하며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몇 년이 흘러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터지고 적백내전이 벌어질 때, 이들은 선상 반란[4]으로 레닌의 볼셰비키에 합류하였고,[5] 핀란드가 독립함에 따라 얼음 여정(Ice Voyage)이라 알려진 본부 이전을 실시하여 헬싱키에서 함대를 이끌고 얼어가는 핀란드 만을 통과하여 페테르부르크의 크론슈타트로 위치를 옮겼다. 하지만 백군을 지원하여 적백내전에 참가한 영국 함대에 대항하여 레닌그라드를 방어하고 있던 페트로파블롭스크(마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인력 부족으로 항구에 주저앉아 운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형국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페트로파블롭스크가 항구를 습격한 영국 어뢰정의 뇌격으로 항구 안에서 격침당해 착저했으며, 폴타바(프룬제)가 정박 중에 전방 보일러에 불이 나서 내부가 홀랑 타버리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결국 폴타바는 사실상 전함으로서의 수명은 끝나버렸다.

개장된 마라(구 페트로파블롭스크)

1921년에는 세바스토폴과 페트로파블롭스크의 승무원들이 크론슈타트의 혁명을 지원했으며[6], 수리를 받고 위의 공산주의식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1930년대 초에는 마라가 첫번째로 대개장에 들어갔으며 이후 3번함 파리쥐스카야 코뮤나가 경순양함밖에 없던 흑해 함대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2번함 마라는 발트 함대의 기함이 된다. 그리고 프룬제(구 폴타바)는 순양전함으로라도 고쳐서 써먹으려 했지만 화재에 의한 손상이 너무 심해 수리 불가 판정을 받고 스크랩 처리했고, 쓸만한 부품은 자매함용으로 전용되었다.

겨울전쟁 당시에는 핀란드 만이 얼기 전에 핀란드 해안포대를 신나게 포격해댄 것, 그리고 대공포가 대대적으로 증설된 것 외에는 딱히 한 일이 없다가, 독일군의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어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자 레닌그라드의 발트함대 군항에 있던 발트 함대의 기함 마라와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는 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 마라는 격침당하고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는 대파당한다. 이들은 모두 자력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손상을 입었으며, 마라의 경우에는 폭탄이 주포탑 부근에 명중한 결과, 유폭으로 인해 함수에서 1번 주포탑까지의 구간이 모두 날아가버리고, 전방 함교가 개발살나는 등 고철로 변해서 수심이 얕은 곳에 착저한 상태였으나, 응급수리를 통해 고정포대로서 독일군과 핀란드군이 몰려오는 곳에 포격을 쏟아부어 공세를 저지했다. 이들의 활약은 마라 항목의 6번 문서 참고. 독일군은 이들을 침몰시키기 위해 급강하폭격기 슈투카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까지 불러냈으나 그의 공격에 큰 피해를 당했음에도 두 함선은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image_220.jpg
[JPG image (Unknown)]
유폭으로 박살난 마라. 사실상 고철이 된 상태에서도 육상에 대한 포격지원을 수행했다.

한편 흑해함대에 있던 3번함 파리쥐스카야 코뮤나도 마냥 안전한 것만은 아니었다. 독일군이 크림반도의 방어선을 돌파하자 노보로시스크로 대피하기도 하였으나, 직후의 세바스토폴 공방전 당시에는 개칭 전 함명이기도 한 흑해함대 모항 세바스토폴을 공격하던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에게 짬짬히 포격을 날려대면서 케르치 반도 상륙작전 당시 지원사격을 맡기도 했다. 이후로도 함포가 다 헤질 때까지 임무를 수행하다가 거의 박살난 나머지 함대를 이끌고 포티에서 1944년까지 있었다가 1945년 세바스토폴로 복귀한다.

image_217.jpg
[JPG image (Unknown)]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파리쥐스카야 코뮤나

이후 이 전함들은 전후에도 해체되지 않고 훈련함으로 쭉 쓰이다가, 1956년 마침내 스크랩 처리된다.

4. 설계 및 구조

4.1. 화력

1907년형 스코다제[7]오브콥스키 12인치 3연장 포탑은 함수에 1기, 전방 함교 후방에 1기, 후방 함교 전방에 1기, 함미에 1기로 총 4기가 설치되었다. 해당 포탑은 -5에서 25도까지 양각 조절이 가능했으며 각 포탑마다 100발의 포탄이 할당되었다. 3연장 포탑인데다 중심선상에 일렬로 배치되었기에 화력의 집중 면에선 당시 독일의 골란트급 전함, 싸우급 전함, 또는 영국의 드레드노트급이나 레로폰급 전함보다 우수했다. 하지만 고작 5~6년뒤 영국과 독일에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구식으로 전락하였다. 당장 위에 예시로 든 전함들 모두가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어 2선급 전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도 1선급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전함을 몇십년이 지난 제2차 세계대전의 피튀기는 상황에서도 화력과 주포배치등의 문제점을 거의 해결하지 않고 강구트급 전함을 그대로 투입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2차대전시기의 기준으로 본다면 12인치 주포는 위력이 약했고[8] 포탑의 배치 또한 문제가 많았다. 이는 일본군의 후소급, 이세급 전함이나 이탈리아의 단테 알리기에리 전함의 요상한 비 적층식 포탑 배치와 같은 형식으로[9], 집중방어 개념과는 동떨어졌기에 후대로 갈수록 방어 효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생겼다. 거기다 이런 구조는 약한 선체 강도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어 일제사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배치를 하면 주포의 회전과 사격을 위해 비워둘 공간이 많이 필요하기에 대공포나 부수장비의 설치가 곤란해졌다.[10] 그렇기에 강구트는 적으로 상정된 독일의 대양함대에 대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며, 그런 연유로 인해 독일의 함대를 피해 전쟁동안 항구에 쳐박혀있게 되었다.

포곽식으로 16기가 배치된 120mm 50구경장 부포는 소형 함정에 대응하기 위해 장착되었으며 초당 3.5도의 속도로 25도까지 양각조절이 가능했다. 그러니 항공기에 대응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지사였으며, 포곽 특유의 취약점을 가진다. 한 문당 300발의 포탄이 할당되었고(245발에서 증가된 것이다.) 15000m의 최대사거리를 지닌다.

대공포는 76mm 단장포 1문이 마스트 뒤에 장착되었다. 1차대전중 4기가 추가로 증설되었으며 이들은 65도까지 양각조절이 가능했다. 분당 12발의 속력으로 속사가 가능했다. 마라의 경우에는 격침당한 후 착저상태에서 고정포대로 쓰기 위해 임시로 육군에서 운용하던 각종 대공포, 기관총을 추가로 증설한다.

4.2. 추진

3,4번 포탑 사이에 위치한 파슨스식 증기터빈으로 4개의 스크류 프로펠러를 돌렸으며, 중앙에도 보일러를 두어 총 42,000마력의 출력을 냈다. 속력은 24.1노트였으나, 선체에 대공포등 각종 신형장비가 증설되면서 속도가 떨어져서 1936년에는 22.5노트까지 하락한다.

4.3. 장갑

러일전쟁에서 일본해군의 특수 소이철갑탄에 당한 전훈을 받아들여, 러시아는 함선 전체에 장갑을 둘러쳐버리기로 하고 2중으로 방어격벽을 구성한다. 이는 당시의 철갑탄에 효과적인 방어를 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유틀란트 해전 이후의 함포 탄종들에는 떨어지는 방어력을 보인다. 거기다 횡방향 격벽은 장갑이 너무 얇았고 구역을 나누는 격벽이 거의 없어 적 전함의 주포를 제대로 맞으면 주포탑, 함교, 바벳 모두가 걸레짝이 될 위험이 있었다.

5. 총평

문제와 결함이 많지만, 당시의 대부분의 러시아제 무기답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능력 이상의 전과를 올린 러시아 최고의 수훈함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강구트급이 없었으면 적백내전에서 페테르부르크가 돌파당했을 수도 있고, 2차대전 때는 레닌그라드가 함락되어 소련 국민들에게 구 수도가 함락되었다는 충격을 주었을 수도 있었다. 혁명부터 조국 방위까지 전부 함께한 소련으로써는 수호자나 다름없는 배들이었다.

6. 등장 매체

----
  • [1] 흑해함대 전용. 반대로 강구트급은 발트함대 전용이었으나 이들이 침몰하는 바람에 한 척이 흑해로 오게 된다.
  • [2] 3척 건조, 2척 침몰
  • [3] 정확히 말하자면 있는 군 예산은 육군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던데다 다른 예산은 차르가 임의로 끌어다 쓸 수 있는 황실 내탕금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 그 바람에 1911년까지는 조선소들이 사실상 사비로 건조하고 있었다(...).
  • [4] 식단 불만이었다고 한다. 포템킨도 그렇고 이쯤 되면 거의 전통이다.
  • [5] 포템킨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러시아 해군의 장병 대우는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
  • [6] 이 혁명은 진압되었다.
  • [7] 체코슬로바키아의 군수기업. 각종 총기, 중포, 35(t), 38(t)전차 등을 생산한 기업이다.
  • [8] HMS 애진코트처럼 말이다.
  • [9] 후소나 이세는 적층식이면서 비적층식이다. 그런 괴악한 설계가 나온 이유는 해당항목 참고.
  • [10] 왜 이런 방식으로 배치했느냐가 의문거린데, 그냥 기술력이 안 되서다. 같이 건조된 임페라트리사 마리야급도 이런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심지어 1916년에 건조하려 했던 정복자 니콜라이 1세급또한 그렇다. 러시아 최초로 이 설계에서 탈피한 전함은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으로 이탈리아 비토리오 베네토급의 설계방식을 착용한데다 능파성은 몰라도 안전성과 협차시 화력은 높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이마저도 건조중 독소전쟁 발발로 나가리됐다.